이왕이면 에세이 쓰기

완벽한 단절도 작별도 없는 세상이기에

이왕이면고기를먹는애 2022. 12. 31. 01:50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일이란 꽤나 맥빠지는 일입니다.

 제 블로그의 글 업데이트 주기를 노리고 한 말은 아니지만, 네, 인정합니다. 근 한 달간 글이 없었죠. 누추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저도 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답니다. 지난 남산 포스팅 후 한 달 남짓 남은 출국 대기 기간동안 꽤나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어요. 계란 아저씨마냥 "우울증이 왔어요!" 라며 유난을 떨고 싶진 않지만, 아무튼 저는 한동안 우중충한 기분으로 지냈습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어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만- 갑자기 주어진 휴가(?)로 인해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얘기해봅니다.

 

 압니다.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는 거. 그치만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 거니까요! 저처럼, 지금까지 번듯한 휴식기를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넘쳐나는 시간이란 정말이지 늪과도 같았습니다. 

내 예쁜 캐리어 두 대

 그런 저에게 다가오는 출국일은 일종의 위안에 가까웠습니다.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죠. 저는 은근 겁쟁이거든요. 아니 은근 따위가 아니라 아주 겁쟁입니다.

 

 혼자 외국에 나가게 된다는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막막함. 우울감이 떨쳐지기 무섭게 따라온 녀석들이 출국 전날밤까지도 저를 물고 놔주지를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시간은 반드시 가고 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거였어요.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요.

 

 그런데 말이죠. 약속을 몰아치듯 나가다 깨달았습니다. 작별은 큰 의미가 아니라는 걸요. 인스타 스토리에서나, 카카오톡에서나, 이곳 블로그에서나 저는 그 누구와도 단절되지 않죠. 애초에 완벽한 단절이란 없었던 거예요.

그리고 미처 적지 못한 너무나도 고마운 모두들

저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저는 이곳에 있을 뿐이죠.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새삼스레 깨닫고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늦게나마 저는 그걸 꽤나 잘 해냈습니다. 그렇기에 라오스에 있는 지금, 제게 글을 쓸 여력이 남아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제 깨달음만큼이나 당연하게도, 저는 이곳 라오스에서 또다른 삶을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많은 것을 모르지만, 적어도 전만큼 두렵진 않아요.

 

 저는 그럼 다음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 밤에 저를 돌이켜보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