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 동안, 야무진 삼시세끼 식사를 거하게 마친 뒤 제 몸뚱이에 대한 죄책감을 못 이겨 산책을 하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여긴 경치도 끝내주고 공기도 맑고 밥도 맛있고 옷도 주고 진짜 다 좋은데,
언제 끝나지?
압니다. 어떻게 이런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냐고 열변을 토하실 거. 근데 저기서 '밥도 맛있고' 랑 '다 좋은데' 만 빼면 놀랍게도 군대거든요.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갇혀있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됩디다. 즐겨먹지도 않던 쏘오맥이 갑자기 땡기고요. 룸메이트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가보지도 못한 맛집들이 눈앞에 막 어른거려요. 그래선지 수료식과 퇴소를 앞둔 지금, 아주 벌써부터 배가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난 글에선 '여유로운 일정' 이라고 적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죄송합니다. 지금 정정할게요. 현지어 학습 일정도 겪지 않았던 때의 저는 상당히 섣부른 놈이었네요. 어디 라오어(라오스어)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애-송이가 함부로 입을 놀렸담. 지난주 금요일과 토요일(네, 토요일도 일정이 있었답니다) 현지어 수업 시간은 그야말로 꽉꽉 차 있던 일정이었습니다. 하루에 7시간을 우겨넣은 외국어 수업, 매코옴했어요.
놀라운 점은 그렇게 빡빡하고 짧았던 수업임에도 상당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단 점입니다. 그게 왜 놀라운 거냐면, 일단 라오어의 문자는 진짜 말도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리터럴리 말이 안 나와요. 익숙하지 않다면 익히기 정말 어려운 문자 중에 하납니다. 저야 예전에 조금이라도 건드려본 언어라 조금 낯익긴 합니다만, 라오 문자를 처음으로 접한 분의 감상을 빌리자면 무슨 뱀이 기어가는 것 같습니다. 산책로에 있는 뱀 조심 표지판을 여기에도 세워둬야 할 판이에요.
당장 글자를 못 읽으면 귀동냥으로 주워들을 수 밖에 없으니,
말은 할 수 있더라도 말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니 글자 읽는 걸 먼저 익히자!
라는 게 강사님의 지론이었습니다. 현지어 평가까지 끝난 수료식 전날 밤인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요, 강사님 말씀이 백 번 맞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읽지도 못했던 문장을 쭉쭉 말하고 있는 제게 스스로 감동할 정도니까요. 입대 전 라오스 가족여행에서 찍었던 사진을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세상을 더 높은 해상도로 보는 느낌이에요.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이 라오어를 배우실 예정이라면, 문자부터 정확하게 익히고 가는 것을 경험자로서 감히 추천드리겠습니다. 이상 아직 자기소개밖에 못하는 풋내기의 조언이었습니다.
수료식을 열두 시간 정도 남겨놓은 지금, 돌이켜보니 현지어 수업을 제외하면 기억에 남는 건 교육 내용보다는 교육을 같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동기 예비단원분들과 함께했던 각종 조별 활동과 발표, 나눴던 토의 내용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아요. 물론 '조별' 이라는 단어를 보신 순간부터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기억이겠거니- 싶으시겠죠. 그게 맞아요ㅎㅎ..
근데 뭐 그게 대수겠습니까. 적어도 배운 건 많습니다. 다양한 연령대 및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나눠보고 소통한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겠어요. 회사나 학교와 같은 일반적인 환경에선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번 국내교육에서 얻은 가장 의미있는 자산은 바로 그게 아닐까 싶네요.
더 좋은 건, 앞으로 파견을 나가서는 훨씬 더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절 더 가슴 뛰게 만듭니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근데 나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너무 낭만에 찬 기대를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안 그런 척하려고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붕 뜬 맘 좀 추스르면서, 남은 기간동안 라오어도 더 공부하고 제가 맡은 한국어교육 분야의 직무 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출국 일자도 한참 남았으니 말예요. 말은 이렇게 해놓고 놀러다닐 듯하지만!
본격적인 파견 활동 전 동기 단원분들 얼굴도 보고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던 이곳, 코이카 영월 글로벌인재교육원. 어렸을 적 겪었던 청학동과 파주 영어마을에 이어 앞으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단체생활이었습니다. 물론 앞의 두 개보다 훨씬 더 보람찬 기억으로요.
자, 저는 내일 무사히 수료식까지 마치고 또다른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출국 전 제대로 먹부림을 할 예정이니 아마 다음 글은 맛집 리뷰 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에세이와 봉사단 이야기도 꾸준히 올릴 테니 기대해주세요.
그럼 안녕, 영월!
'이왕이면 라오스에서 봉사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앙프라방에서 자전거 도둑맞았다가 되찾은 썰 푼다 - 下 (2) | 2023.04.24 |
---|---|
루앙프라방에서 자전거 도둑맞았다가 되찾은 썰 푼다 - 上 (1) | 2023.04.23 |
지난 사흘 간의 이야기(feat. KOICA 글로벌인재교육원) (1) | 2022.10.27 |
프롤로그 : 라오스로 떠나게 된 이유 (0) | 2022.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