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에세이 쓰기8 0. 저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던 밤을 너무나도 많이 지나쳤습니다 한 일 년쯤 되었을까요, 밤샘 근무를 하던 때였습니다. 주말 이틀을 연속으로 꼬박 당직을 서는 일이었는데, 글쎄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제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죠. 공부나 독서 등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 그냥 자기, 시간이나 때우기. 제가 뭘 했게요? 놀라지 마세요. 무려 유튜브 시청을 했습니다. 그것도 언제나 집에서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았던 영상을 말이죠.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다 봤으면 또 또 또 되돌려 봤더랬지요. 무한도전 오분순삭이나 침펄토론이 주메뉴였습니다. 용서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구하게 되는 법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저는 제게 용서를 구해보려 해요. 그 수많은 밤 동안 제가 저 스스로를 외면해왔던 점에 대해서요.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하기 좋은 시간대를 뽑으라면 .. 2023. 3. 6. 완벽한 단절도 작별도 없는 세상이기에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다리는 일이란 꽤나 맥빠지는 일입니다. 제 블로그의 글 업데이트 주기를 노리고 한 말은 아니지만, 네, 인정합니다. 근 한 달간 글이 없었죠. 누추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저도 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답니다. 지난 남산 포스팅 후 한 달 남짓 남은 출국 대기 기간동안 꽤나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어요. 계란 아저씨마냥 "우울증이 왔어요!" 라며 유난을 떨고 싶진 않지만, 아무튼 저는 한동안 우중충한 기분으로 지냈습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어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만- 갑자기 주어진 휴가(?)로 인해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얘기해봅니다. 압니다.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는 거. 그치만 사.. 2022. 12. 31. 남산에서 후배들한테 맞은 썰 풉니다. 유난히도 컸던 친구의 코골이로 밤잠을 설치고 나선 아침의 홍대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한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치킨과 데낄라라는 요상한 조합으로 달린 뒤라 아침부터 약속을 나가는 게 조금은 벅차더라고요. 자취방 바닥에서 잠든 탓에 배기는 등은 덤이었죠. 하라는 남산 얘기는 안 하고 웬 생로병사의 비밀 -식습관 및 수면 습관 편- 에서나 들을 법한 얘기는 왜 하냐고요? 이 일정이 제게 꽤나 무리였다는 점을 짚어두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적어도 일상적인 패턴은 아니었다 이거죠.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 행복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오는 법입니다. 을지로3가를 거쳐 3호선의 동대입구역에 내리니, 먼저 와 있던 후배님이 씩씩한 걸음으로 다가오며 저를 맞아줬습니다. 20분 정도 일찍 온 건데도 이미 도착해있는.. 2022. 11. 15. 참담함을 느끼며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깔려 죽었다. 단순한 사실을 담고 있음에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이 있다. 가령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와 같은 문장이라거나,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사고로, (중략)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다.’ 와 같은 문장 등이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깔려 죽었다’. 내가 쓴 건 고작 이 한 문장뿐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간단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지만, 참혹함만은 앞선 문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핼러윈 이태원이라는 시기와 지역의 특수성이라든지, .. 2022. 10. 31. 원 어릴 적엔 제 이름에 들어간 '원' 이 으뜸 원(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풀이한 저는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으뜸 가는 재상' 이라니! "긍게 우리 손주 국무총리까지 할 사람이라 혔다 안허냐." 이모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매년 점을 보셨던 할머니의 말씀. 할머니께는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전 국무총리가 되기엔 어려운 몸입니다. 아무렴, 서울대도 그래서 안 갔어요. 진짜로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 으뜸 가는 재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밝혀진 경악스러운 진실은 '원' 이 으뜸 원이 아니라 강 이름 원(沅)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의미는 개뿔, 이름으로 만든 이름인 거예요. 어쩌겠습니까, 하물며 포도도 포도 포(葡)에 포도 도(萄)를 쓰는 것을. 으뜸 원 자에 .. 2022. 10. 26. 끝이 있음에 감사하기 비 오는 구로디지털단지역의 토요일 저녁 6시 반. 역 앞엔 '깔깔거리'라는, 구로구의 홍대 거리라 할 만한 먹자골목이 있습니다. 불콰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리는 아저씨들, 한숨을 실은 담배 연기를 내뱉는 사람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연인들, 그리고 그들을 피해 종종걸음치는 제가 있는 곳이죠. 가끔은 길에 대책없이 뿌려진 유흥업소 전단지에 눈쌀이 찌푸려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비가 오면 난리도 아니죠. 지난 반 년 간 한 방송국에서 주말 야간 근무를 하느라 이곳을 지겹게 지나다녔던 제겐 지겹기 짝이 없는 풍경이지만서도, 사뭇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애초에 비도 오로지 집에 틀어박힌 채 창밖으로 볼 때만 좋아하던 저지만 오늘은 괜스레 기분이 묘합니다. 바뀐 풍경이라곤 망한 술집 대신 .. 2022. 10. 15.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