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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에세이 쓰기

0. 저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던 밤을 너무나도 많이 지나쳤습니다

by 이왕이면고기를먹는애 2023. 3. 6.

 한 일 년쯤 되었을까요, 밤샘 근무를 하던 때였습니다. 주말 이틀을 연속으로 꼬박 당직을 서는 일이었는데, 글쎄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제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죠. 공부나 독서 등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 그냥 자기, 시간이나 때우기.

 

 제가 뭘 했게요? 놀라지 마세요. 무려 유튜브 시청을 했습니다. 그것도 언제나 집에서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았던 영상을 말이죠. 보고 또 보고 또 또 보고 다 봤으면 또 또 또 되돌려 봤더랬지요. 무한도전 오분순삭이나 침펄토론이 주메뉴였습니다.

 

 용서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구하게 되는 법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저는 제게 용서를 구해보려 해요. 그 수많은 밤 동안 제가 저 스스로를 외면해왔던 점에 대해서요.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하기 좋은 시간대를 뽑으라면 저는 밤과 새벽, 그 중간 어디쯤을 고르겠어요. 문제는 그 시간에 깨어있기가 어렵다는 거죠. 이러니 제가 더욱 괘씸한 겁니다. 밤샘 근무니까 어차피 깨어있을 거고, 그럼 어려운 부분은 얼추 해결된 셈인데 정작 해야할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왜 그랬냐고 일 년 전의 제게 물어본다면 아마 답을 피했을 겁니다. 부끄러워서요.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으레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 자기 자신을 과한 애정으로 분칠한 것처럼 비치는 게 두려워서였습니다. 아직 채울 것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도 몰랐던 과거의 저처럼요. 저는, 적어도 지금의 전 도저히 긍정하고 싶지 않은 제 모습도 그대로 바라보려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저니까요. 꾸며진 제 모습은 제가 아니라 그저 연극의 배역일 뿐이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진실한 모습을 항상 내보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때론 다정한 관객을 위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저는 이곳에서라도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무슨 신체 사이즈 프로필을 줄줄 읽겠다는 건 아니고요. 평소에 생각해두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말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 그리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요. 주제에 따라서 때론 짧기도, 때로는 길기도 할 거예요.

 

 수상록이라느니 아포리즘이라느니 거창한 이름은 붙이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그렇듯 나처럼 살라는 둥의 내용은 더더욱 담기 싫어요. 생각과 답을 섣부르게 칼질하다간,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마음을 베기 십상이잖아요. 다만 한 사람의 담담한 고백과 반성으로 여러분에게 다가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덧붙여 저 스스로에게도, 자신을 내보이는 용기를 잃지 않고 정진할 수 있기를 작게나마 다짐해봅니다.

 지나쳐온 밤과 새벽에 묻어둔 이야기가 많습니다.

 천천히 꺼내 볼게요.

 

 저는 이원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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