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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에세이 쓰기

참담함을 느끼며

by 이왕이면고기를먹는애 2022. 10. 31.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깔려 죽었다.

 단순한 사실을 담고 있음에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말이 있다. 가령 ‘2014년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사고로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와 같은 문장이라거나,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경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사고로, (중략) 사망자는 502명, 부상자는 937명이며 6명은 실종되었다.’ 와 같은 문장 등이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깔려 죽었다’. 내가 쓴 건 고작 이 한 문장뿐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간단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지만, 참혹함만은 앞선 문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핼러윈 이태원이라는 시기와 지역의 특수성이라든지, 지자체 관리 능력의 부족이라든지 여타 사건 요인과 배경을 모두 차치하고 보아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사람들에 깔리고 밟혔다. 한두 명도 아니요, 수십 명도 아닌, 자그마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고 발생 당일 아침 6시경, 현장 최종 브리핑에서 용산소방서 측이 밝힌 사망자는 149명, 부상자는 76명이었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부상자 수가 종전에 발표됐던 수보다 왜 적어졌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성범 서장이 답한 내용이다. 부상자 중 중상을 입으신 분들이 결국 사망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그의 답변. 그렇게,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던 최 서장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 쓸 도리가 없었다, 현장을 목격했던 사고 발생 장소 근처 클럽의 종업원도 울먹이며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인파 속에서 살려달라고, 제발 날 좀 꺼내달라고 뻗는 손을 그는 잡을 수는 있었지만, 그들을 살릴 수 없었다. 개인으로선 그 누구도 그럴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31일 현재, 최종적으로 밝혀진 이태원 압사 사고의 사망자 수는 154명, 부상자 수는 132명이다. 중학생 1명과 고등학생 5명을 포함해, 대부분의 피해자는 청년이었다. 속속들이 들어오는 소식에 남 일 같지 않아 목구멍이 꽉 막힌다. 황망한 마음으로 몇 줄 적고 있는 글이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안타까움과 참담함을 다할 수 없는 현실이 더욱 괴롭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을뿐더러, 아직은 진상이 확실히 규명되지 않은 터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적다. 국가재난에 필적할만한 사건에 어느 누가 칼로 자른 듯 말할 수 있을까. 뒤에서 누군가가 밀라며 소리를 질렀다는 증언이나 응급차 사이렌 소리에 춤을 추고 있는 영상 등이 많이 퍼져있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이를 두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 무분별한 비난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상황이 어땠고 사후 대처가 어찌 되어야 했는지 가타부타하는 것은 현장에 있던 분들과 전문가의 몫이다.

 다만 유일하게 염려되는 것은 고인을 비롯한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다. 당장 정부 측에서 발표한 이번 사건의 유족에게 장례지원금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의 댓글부터 그 전조가 보이고 있다. ‘놀러 간 것들이 죽은 게 뭐 유세라고 내 세금을 쓰냐’ 는 논조의 댓글이 대표적인 그런 모습이겠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고,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판이라는 탈을 쓰고 유족과 고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 표현으로 점철하는 것은 그저 어리석은 외골수로 보일 뿐이다. 신경정신의학회에서 호소했듯,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뿐 재난 상황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끝으로 이번 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고통받는 분들, 그리고 끔찍한 참상에 심적으로 동요되어 맘이 편치 않은 분들 모두 하루빨리 안정을 찾으시길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고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다만 사후 수습에 전력을 기울여 추후 이런 참사가 다시는 발생치 않도록 대처 방안을 모색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두서없는 졸문을 쓰며 잊지 않을 뿐이지만, 우리나라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은 스스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가족과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하는 것은 트라우마를 더욱 가중하고 회복을 방해할 뿐이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뿐 재난 상황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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